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과격한 언사다.
내가 생각해도 철없는 모험을 했다하지만 그는 조선을 비하하지 않았다.
이는 유럽의 인쇄술 발명보다 100년이나 앞선다!라고 썼다.청화백자 자체가 푸른색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취향에 맞춰 수출용으로 개발한 것이었다.이후 광해군 때 일본에 파견된 이경직은 포로로 잡혀간 조선 도공들을 데려오려 했으나 그중 상당수가 이미 일본이 자리를 잡았기에 귀환을 거부했다고 『부상록』에 썼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김환기의 1950년대 말~60년대 초 그림에 등장하는.
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
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그는 조선 도자기 역사도 제법 알고 있었다.
주자학 근본주의를 따르면서.[사진 한국도예협회] 그 여파는 오스트리아 여행작가 헤세-바르텍(1854~1918)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그래도 그는 조선인은 훌륭한 본성 때문에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이번에 달항아리 못지않게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법한 청화철화백자도 한 점 나왔다(사진 2).